지난 주말, 여행을 콘셉트로 한 실내 페스티벌 '해브 어 나이스 트립(이하 해나트)'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개최 2회를 맞이하며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개성이 확실하게 업그레이드된 큐레이션 라인업이었습니다. 티켓 파워가 보장된, 요즘 페스티벌에서 활약하는 팀 위주로 데려오기보다는, 국내 리스너들의 수요와 지지가 꽤 존재하지만 그에 반해 내한 소식은 요원해 보였던 아티스트가 비중 있게 이름을 올린 라인업이었어요. 덕분에 킹 크룰(King Krule), 올웨이즈(Alvvays), 피치 핏(Peach Pit), 걸 갱(Grrrl Gang) 등 한국을 처음 찾는 해외 아티스트를 한 번에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레미 울프도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며칠 전 아티스트의 건강 문제로 갑작스레 취소되었답니다.) 거기에 권진아, 홍이삭, 키스오브라이프 등 대중적인 아티스트도 적절히 배치되었어요. '나는 조금 신선한 라인업의 페스티벌에 가보고 싶다!'라는 분들에게는 지난 6월 첫 개최되었던 아시안 팝 페스티벌과 함께 이 해나트를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별 공연 후기는 페스티벌 라이프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과 함께 공유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진한 여운을 남겼던 무대는 아무래도 명불허전 트래비스(Travis)였습니다. 최근 FAPER <떼창 속으로>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그 유명한 'Closer' 종이비행기 이벤트가 재현된 것은 물론이었고요. 오랜 대표곡은 정겨움과 울림을, 최근 발매된 신곡은 아직 죽지 않은 명밴드의 기량을 선사했어요. 보컬 프란 힐리는 아주 쨍한 주황 머리를 하고 왔지만, 멘트는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딩 교수님처럼 주옥같은 명언을 쏟아내 노래 전후로 감동을 배가했습니다. 특히 멤버 넷이 가운데 모여서 불렀던 'Flowers In The Window'가 밴드 덕후의 과몰입을 제대로 유발했는데, 트래비스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영상을 확인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안락한 빈백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빵빵한 에어컨 바람 아래 시원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공연을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사실 여름 페스티벌은 땀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다가 나중에 추억 미화와 낭만 보정을 거치는 것이 정석적인 이미지고 루틴일 텐데요. 그래도 이렇게 자외선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즐기는 실내 페스티벌도 중간에 한 번씩 다녀와주니 밸런스가 잘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주에는 다시 송도 불구덩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지만요. 이번 주말엔 다시 폭염을 무릅쓰고 실외 페스티벌로 향할 분, 많으시겠죠...?🔥

 도쿄 Marine Stage, Mountain Stage 

 오사카 Air Stage 

작년엔 토요일 비치 스테이지의 전체 큐레이션을 도맡았던 호시노 겐. 올해는 당당히 마린 스테이지의 서브 헤드라이너에 이름을 올리며 라인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그는 현재 전 세대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인 멀티테이너 중 한 명입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작가 등 본인이 임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그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의 인지도가 압도적이기에 결혼 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도대체 누구인데 아라가키 유이와 결혼하는 거야?”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이미 그 시점에서 드라마/영화 주연급임과 동시에 돔 투어가 가능한 가수로서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많은 분이 아마 그를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해당 작품의 주제가였던 ‘恋(koi)’로 기억하실 겁니다. 사실 그의 커리어는 참으로 파란만장합니다. 인스트루멘탈 밴드 사케록(SAKEROCK)의 기타리스트이자 마림바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해, 이후 힘든 시기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읊조린 초창기의 솔로 커리어로 접어듭니다. 특히 2집 <エピソード(Episode)>(2011)는 미디어를 통해 그의 밝은 모습만 본 이들에게는 어색할 정도로, 담담하게 내면으로 침잠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이어 여러 일을 병행하며 3집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발병한 지주막하출혈은 그의 인생관을 크게 뒤흔듭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한 후 선보인 <YELLOW DANCER>(2015)는, 블랙뮤직의 감수성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일본의 팝으로 체화시키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보다 긍정적인 정서를 대중들에게 흩뿌리는 결과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곰방와~ 호시노 겐 데쓰~”라고 외치는 밝은 표정의 인사는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죠.

이후 지금까지의 모습에 얽매임 없이 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EP <Same Thing>(2019)을 통해 그의 커리어는 또 한 번 요동칩니다. 밴드 중심의 리얼 세션보다는 소프트웨어나 키보드 플레이에 집중한 비트 중심의 힙합, 일렉트로니카의 요소가 덧붙여진 칠 아웃 중심의 트랙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죠. 작년에 선보인 ‘光の跡’는 1990년대 아메리칸 팝과 뉴잭스윙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런 현지에 기반한 레트로함이 부각되어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그지만, 어쨌거나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무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굳이 주위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그의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있자면, 바로 그곳이 여러분을 위한 댄스 플로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으실 겁니다!

 🎧 이 곡만은 꼭! 

• 恋, SUN, 地獄でなぜ悪い

 👍 추천 라이브 영상 

• 호시노 겐 – 恋 (Live at Tokyo Dome 2019)

작년에 이 콘텐츠를 진행하며 일본 내 블랙뮤직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말씀드린 바 있었는데요. 그 흐름을 타고 지난 2월 단일 힙합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크루 배드 홉(BAD HOP)이 도쿄돔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었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통을 이어받을 이들이 일찌감치 정해졌습니다. 그 이름하야 크리피 넛츠. DJ를 맡고 있는 DJ 마츠나가와 MC를 담당하는 R-시테이로 이루어진 듀오입니다. 아마 최근 애니메이션 <마슐 : 신각자 후보 선발편>의 오프닝으로 타이업됨과 동시에 BBBB 댄스를 통해 숏폼 챌린지를 휩쓴 ‘Bling-Bang-Bang-Born’의 주인공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상반기 최고 히트곡으로 확정된 그 기세를 타고, 내년 2월 돔 공연 개최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커리어가 막 절정에 맞은 시기에 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팀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정통성을 강조하기보단, 랩을 중심으로 좀 더 파퓰러한 음악들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의 히트곡 중 하나인 ‘のびしろ’와 같은 곡이 대표적인데요. 밴드 사운드 기반의 경쾌한 곡조에 리드미컬한 랩이 기분 좋게 얹혀 듣는 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죠. ‘멋’과 ‘유니크함’보다는 ‘친숙함’과 ‘즐거움’을 지향하고 있기에, 록/뮤직 페스티벌에서도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대중들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 예정이라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아실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피치 못 하게 인천을 찾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앞으로 점점 보기 힘들어질 이들의 라이브를 꼭 경험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페스티벌에 랩이 이렇게나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 이 곡만은 꼭! 

• のびしろ, かつて天才だった俺たちへ, Bling-Bang-Bang-Born

 👍 추천 라이브 영상 

• Creepy Nuts - Bling-Bang-Bang-Born (Live at 国立代々木競技場 第一体育館)

모두가 쿨함을 외치는 지금, 이들은 그런 시대상에 반기를 들듯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노래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돌직구가 오그라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이 그렇게 자신들의 생각과 철학을 어느덧 20년 가까이 꾸준히 노래해 오고 있습니다. 멤버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내 만들어 가는 강렬한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그 중심에서 메시지와 이야기를 쏟아내다시피 하는 시부야 료타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작년에 한 록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무대를 오랜만에 봤는데요. 괜스레 울컥하더라고요. 사실 어딘가에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만큼 그들의 노래들은 “잘해왔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삶에 있어 행복의 근원이 된다는 ‘秘密’를 들을 때 특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간직해 나간다는 건, 때로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만약 일본어를 조금 아시는 분들에게 더 어필하는 측면은 있겠지만, 어쨌든 음악은 언어 같은 건 가볍게 뛰어넘기 마련이죠. 이들의 무대를 보며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마음속 그 뜨거운 열정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쁨에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은

歓びに声を上げ叫ぶのは

행복에 손뼉을 치며 웃는 것은

幸せに手を叩き笑うのは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을

好きなこと 好きな人のことを

포기하지 않았던 그런 순간일거야

諦めなかったそんな瞬間だろう

- ‘秘密’ 가사 중

 🎧 이 곡만은 꼭! 

• 名前を呼ぶよ, 秘密, アイラヴユ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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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ER BEAVER「グラデーション」【SUPER BEAVER 都会のラクダ柿落としSP〜新宿生まれの、ラクダ〜 2023.4.17 at Zepp Shinjuku (TOKYO) 】

이야, 글레이라뇨. 사실 아시는 분들은 “언제 적 글레이야”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레전드라 칭하고 싶습니다. 1994년 비주얼계 광풍의 끝자락을 타고 데뷔했지만, 특유의 대중성을 통해 일본의 팝록 그 자체로 군림하며 뛰어난 연주력과 캐치한 멜로디로 수많은 대중을 사로잡아온 지도 어느덧 30년. 커리어 초반의 부진함을 딛고 국민적 록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돌아보면 결국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기본적인 명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페스티벌 출연이 그렇게 많지 않은 밴드에 있어 이번 출연은 11월부터 있을 데뷔 30주년 기념 아레나 투어의 전초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요. ‘HOWEVER’나 ‘Winter, again’, ‘誘惑’, ‘グロリアス’ 등 그들이 전성기를 보냈던 1990년대의 히트곡들은 물론, 엔하이픈의 제이와 협업한 최근 싱글 ‘whodunit’까지. 그들의 활동을 총망라한 의미 있는 무대로 꾸며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의 밴드사, 이를 넘어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빠져선 안 되는 거장의 관록, 하지만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은 그들의 ‘지금’이 명징하게 묻어나 올 퍼포먼스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자는 과연 예전 히트곡을 원키로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시겠지만, 보컬 테루를 비롯한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당시와 비교해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 음악의 근본을 느껴보고 싶다는 분들께 글레이의 공연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 이 곡만은 꼭! 

• HOWEVER, グロリアス, 誘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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