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레논이 항상 안경을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있었지만, 비틀즈 활동 초창기에는 콘택트렌즈를 쓰고 다녔다고 해요. 하지만 레논의 첫 번째 부인 신시아 레논에 따르면, 공연 중간중간 이물이 보인다거나 눈에 무언가를 맞아 고통을 겪는 등, 렌즈에 대한 불편함을 꾸준히 느껴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레논은 1967년, <How I Won the War>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보건복지부(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대량생산한 싸구려 둥근 테 안경을 쓰고요. 레논이 안경 쓴 모습을 대중에게 처음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그렇게 좋은 평을 얻진 못했지만 레논의 안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레논의 '못생겼지만 특별한' 안경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비슷한 모양의 안경이 전 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트렌드는 안경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스레 선글라스 유행에도 불을 붙였는데, 레논이 가장 좋아하던 오렌지색 틴트 선글라스가 가장 유명해졌습니다. 레논은 풍수(feng shui)를 좋아했는데, 그에 따르면 주황이 창의력을 증대시키는 색이었기 때문입니다.

레논 스타일의 안경이 인기를 끈 만큼, 레논이 썼던 안경들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습니다. 일례로, 레논이 최고 히트곡 'Imagine' 활동 시기에 썼던 안경은 현재 리버풀에 있는 비틀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대략 150만 달러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비틀즈 일본 투어 중 레논이 통역가에게 선물로 준 또 다른 안경은 훗날 경매에서 2백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비틀즈와 레논의 곡이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듯, 레논의 안경에서 비롯된 패션 역시 그러합니다. 지금도 여러 안경 부티크에서 존 레논의 안경에서 영감을 받은 레논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이너의 영감이 되는 20세기 말 히피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 역시 존 레논이니까요. 뮤지션들의 뮤지션, 아이콘들의 아이콘이었던 존 레논. 이제는 그의 새로운 노래와 멋을 느낄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입니다.